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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영야초 ~ Imperishable Night
후기 상하이 앨리스 통신 vol.3
상하이앨리스환악단장 ZUN
200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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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후기풍
○탄막은 프로그래머에게 남겨진 희소한 낙원이다
zun(프로그래머 인격)
게임이라는 작품은 누구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라고는 해도 회사 물건이라든가 저작권이라든가 권리소유자의 이야기나 심지어는 "게임은 모두의 것"이라든가 게임 전체의 이야기는 아니다. 게임을 작품으로 보았을 경우 그 작품의 세계는 누구의 세계를 비추는 것일까, 또한 그 사람은 게임과 어떤 관계인가, 그것을 명확히 하는 데 의미가 있는가, 그런 이야기이다.
여기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화가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바로 그 그림이 작가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반드시 그 작가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그림 도구나 그림 소재를 만드는 직인도 있다. 어쩌면 그 그림은 어떤 직인이 만든 그림도구이기에 완성된 작품인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 작품에 강하게 영향받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 때의 시대배경이 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라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색을 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림은 그 화가의 것이다.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든 항상 작품명에 화가의 이름이 붙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화가를 지탱하는 직인 모두의 것도, 현재의 소유자의 것도, 심지어는 전시회 측의 것도 아니다.
영화도 그렇다. 스폰서도 배우도 음향 등의 스탭도 영화에 있어 필수불가결이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고는 있어도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영화감독의 것이다.
말할 것도 없다. 창작은 창작자가 가진 세계, 사상, 철학, 경험의 표현이다. 환경이 변한다고 해도 창작자만 있으면 작품은 만들어지지만 편리한 도구, 실력 있는 직인, 높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만으로는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요와 충분의 경계가 창작결계이다. 즉 창작자와 직인의 경계다.
물론 여기까지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창작물에는 아직 결계가 불명확한 부분도 있다. 특히 게임은 창작물이 여러 가지 섞여 있기 때문에 창작자와 직인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많다.
주로 게임 제작은 프로그램(시스템), 그림, 음악,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특히 게임을 창작한 적이 없는 사람이 보면 어떻게 보일 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도구이며 게임 창작 자체가 아니다. 그럼 뭘로 만들어져 있냐면 게임은 게임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이외의 프로그램(시스템), 그림, 음악, 시나리오는 전부 게임 디자인을 충실히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도구만으로 게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요하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역으로 게임 디자인밖에 없을 경우엔 게임이 만들어질까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장르와 플랫폼을 구분하지 않는. 그 시기에 이용가능한 것 중 가장 적합한 '도구'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도 그림 작가도 음악가도 시나리오 라이터도 도구를 사용하는 직인이지 창작자가 아니다. 창작자가 가진 세계, 상상, 철학, 경험의 표현을 가능한 한 기술로 재현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들떠서 멋대로 직인 개인의 세계와 부딪혀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게임은 주체를 잃고 창작물은 탈선을 시작한다. 직인은 어디까지나 뒷편, 즉 직인 자체도 도구이다.
그러나 여기에 (성가신 일이지만)게임 제작을 포기하지 않는 프로그래머 인격이 있다. 물론 내 얘기지만.
나처럼 "스스로 게임을 창조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다", 혹은 "우리들이 게임을 만들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직인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창작자에게 의견을 말할 것이다.
자신의 게임에 대해 가설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그것이 채용되는 것으로 게임 제작에 "추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가 우수할(*1)수록 참가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작아진다. 주어진 것만을 충실히 수행할 뿐인 제작은 게임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중대한 모티베이션 저하로 이어지는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프로그래머는 이러한 위기를 느끼고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허세와 행동력으로 실제로 만들어 창작자(인격)를 잘 속이는 것으로 게임의 창작부분에 편승할 수 있다. 창작부분, 즉 가장 즐거운 부분을 프로그래머가 편승한다. 잘만 되면 게임을 프로그래머의 것으로 할 수도 있다.
실은 STG(특히 탄막)은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그런 허세가 통한다) 부분이 실로 많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탄이나 아이템이 일으키는 예상외의 결과, 보통 사람은 계산조차 하지 못할 카오스. 기호적이고 추상적인 게임성.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쾌감... 즉 탄막은 프로그래머가 게임 창작에 편승하기 쉬운 게임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동인창작에는 창작을 즐기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즐길까 하고 생각해서 우리들 프로그래머는 창작의 마약을 찾아 STG에 손을 뻗는다. 여기에서는 숙성된 디자인 중에서도 프로그래머의 아트적인 부분이 게임성으로써 표현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인의 탄막에는 유저(특히 슈터)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게임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 개인이 가진 세계를 표현한 게임, 즉 "프로그래머의 것인 창작 게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게임은 게임 창작자(디자이너)의 것이다.
하지만 탄막은 다르다.
탄막은 우리들 프로그래머에게 남겨진 희소한 낙원.
최후의 낙원이다.
--동방의 낙원을, 뻔히 창작인격에게 넘겨줄까 보냐!
...
...
...
게임에서 머신 성능의 제약이 줄어 차례로 신기한 기술도 점점 사라져 간다. 우수한 기술력만으로 새로운 표현이라고 불리는 시대는 끝을 맞았다. 리얼한 3D공간이나 모델이 리얼하게 움직인다든가 그런 것을 더 이상 창작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우수한 기술이나 잘 만들어진 직인기가 아닌 작품으로써의 매력이 필요하다.
직인인격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된다. 직인인격들이 멋대로 나의 세계에 개입한다면 게임은 산산조각나지 않겠는가. 동방은 직인인격의 손을 벗어나 언젠가는 나의 것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게임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표현이다. 결코 직인기술 발표회가 아니다. 동방도 창작자인 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또 프로그래머 인격이 내 게임 창작에 불평하고 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내게 맡겨두면 좋은데, 그것을 모르는가? 프로그래머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과거의 경험을 써서 자신을 끼워넣는 경우가 있다. 그런 자신을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착각도 정도가 심하다. 그것은 머리가 굳은 것이다. 너무 굳어서 얼어붙은 철이 누름돌로 변질된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라고는 해도 내가 프로그래머 인격과 함께 동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영야초에서는 조금 더 꿈을 보여 줘도 괜찮을까. 프로그래머가 게임을 만들던 시대의 과거의 꿈을.
탄막은... 동방은, 언제까지나 화서의 나라다. 꿈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Z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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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멋대로인, 독선주의적인, 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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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프로그래머의 농담은 이대로 놔두고, 이제 본론에 들어갑니다. 타이틀에 속아 칼럼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착각이에요(웃음)
영야초, 조금 이상한 풍은 있습니다만 결국 보통의 동방입니다. 2인 1조로 적을 공격하다니 비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잘 보면 동시에 두 사람이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항상 1대1로 싸우고 있습니다. (프리즘리버는 비겁한건가? (웃음))
한 사람이 져도 두 사람이 얌전히 퇴각하니 그 부분은 제대로 룰을 지키고 있기도 하고요.
거기에 그녀들의 여유랄까 놀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전작처럼 1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초기단계와 체험판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보통과 시스템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전용 스토리는 없습니다. 분명 4+8=12 캐릭터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리도 없고요.
난이도는 미묘한 부분으로, 인간 요괴의 선택을 잘못하면 약간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써서 사역마를 부수면 쉬워지는 안배입니다만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그 부분은 여러 가지로 부딪쳐봐 주세요.
그래도 체험판의 존재는 있기 어려울지도^^; 라고는 해도 체험판의 감상을 보고 조절하는 것보다는 체험판에서 미리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제품판에서 0에서부터가 아닌 처음부터 풀로 즐긴다고 하는, 그런 비겁한 전개가 가능합니다. (너무해...^^;)
시장의 게임 같은 튜토리얼을 넣거나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것 실제로는 PC게임으로서의 전개방법으로서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동방의 경우 체험판으로 꽤 오랫동안 할 수 있습니다. (전체의 1/3 정도?) 이것을 아깝다고 볼 지, 아니면 배짱이 크다고 할지, 아니면 비겁하다고 볼지... 비겁하죠(웃음) 분위기가 무르익은 부분에서 일단 CM입니다. 실제론 없지만.
다만 어떻게든 3면만으로 분위기가 많이 안 살아요. 시장의 게임(특히 아케이드)는 1~2면에 화려한 스테이지를 배치해서 시선을 끌려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방은 처음부터 수수합니다. 진짜로.
결국 동방의 스테이지는 보스가 중요해서, 너무 화려하게 하면 강한 보스가 안 나와서 밸런스가 안 맞아요. 하지만 스토리상 전반에 강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장은 어디까지나 앞좌석 취급. 요요몽은 4면 이후부터 빠르게 연출이 변화했고, 영야초의 후반부 텐션은 굉장하다고요. 제 머리 속에서는.
뭐 용두사미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전반부는 적당히 넘어가주세요^^; (오프닝이라든가 1면이나 도입부만이 대단한 게임이라는 게 슬픈 일이기도, 오히려 완성되지 않았다든가 하면 눈 뜨고 못 봐주는 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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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보이는 인간과 술 마시러 가다.
이번 인간과 요괴 스위칭으로 적이 변화하는 것 말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타입을 나누는 시스템은 예전부터 꽤 있었고,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제 맛을 살릴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시중에 나온 STG는 이런 부분을 잘 살린 것이 많고 그 부분은 역시 프로구나 하는 게 느껴집니다.
홍마향, 요요몽부터 감이 좋은 사람은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그 두 게임에도 인간과 요괴 2인 1조라는 키워드는 어느 정도 넣어 두었죠.인간 요괴의 2인 1조인 게임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갑자기 플레이어 캐릭터를 신 캐릭터로 만들어도 그다지 애착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적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게임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으로 3부작 예정, 호흡이 긴 이야기입니다.
사쿠야와 요우무의 상대역 요괴를 위화감 없이 내는 것은 간단했지만 레이무와 마리사의 상대역을 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요괴판 마리사라 칭하는 앨리스는 그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만 요요몽 때는 꽤 뜬금없어서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유카리는 레이무와 능력을 나누고, 성격도 뜬구름 잡는 듯한 부분을 연출시켜 보았습니다. 레이무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이런 식으로, 수상쩍은 것은 그 때문이죠.
시스템은 전작까지 즐겼던 분들이 위화감을 느끼면 그것도 그거라, 여러가지로 시험해 본 결과 고속과 저속에 다른 캐릭터를 배정하는 무난한 방향으로 했습니다. 실제로 즐기는 감각은 요요몽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요요몽 때도 양쪽 샷이 다른 모양새였고, 뭐 제한사양이나 토글이라든가 싫어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만^^; (토글제는 옵션으로 준비해 둘까도 했었는데, 필요한가요?)
그런 중에도 영야초의 이 시스템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해서 만든 뒤에 이유를 붙인다. 즉 시스템이 만들어진 경위를 무리해서 세계관에 집어 넣으려는 것을 가능한한 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줄타기 게임이 되는 부분을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영야초에서는 여기서 인간과 요괴 그리고 사역마(허상)라는 부분이 포인트입니다. 요괴는, 인간이 사역마에게 간섭당해 본체를 노리지 못하는 것을 '어차피 인간이네'라고 생각하며 봅니다. 역으로 인간은, 요괴는 단락적이라 목표밖에 보지 못하는군 하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요괴는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개로 뒤덮거나, 벚꽃이 보고 싶어서 봄을 모으는 정도의 녀석들이니까요. 탄을 쏘는 허상 같은 걸 쓰러뜨릴 새가 있으면 전부 회피해서 본체를 노리죠(웃음)
시스템적으로 캐릭터의 변경에 게임적으로도 설정적으로도 의미가 있어 그것이 쌍방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이상이기도 합니다. 설정과 시스템을 나눌 필요는 없고, 오히려 나눠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그런 생각이 프로그래머 인격에는 부족하죠 (웃음))
참고로 사역마라는 시스템은 알기 쉽게 말하면 대형 보스의 포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것도 꽤나 플렉서블한 느낌입니다. 보스 본체는 보스의 약점입니다. 단지 보통과 다른 것은 포대를 쓰러뜨리지 않는 쪽이 고득점이 된다 하는 정도일까요.
이 게임의 득점이란 예술적인걸까요(웃음)
아, 물론 사역마에게도 자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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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슬픈 초반부 보스.
이번엔 라스트 보스 클래스의 캐릭터들이 플레이어 캐릭터(라고는 해도 레이무들은 그 라스트보스 클래스보다 강합니다만)인지라 서장부터 적의 능력이 강대합니다. 아마도.
뭐 1면 보스는 정말 단순히 샌드백이기 때문에 회화에서도 누구에게도 상대가 되어 주지 않아 약간 불쌍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서장 보스와 비교하면 분명 능력이 높습니다. 샌드백 역이고 벌레일 뿐이지만요.
그렇다고 해도 역시 1면 보스의 탄막은 작은 벌레인걸까요. 상상해보면 꽤 대단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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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자주규제와 부동소수
돌아보면 동방이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표현이 여기저기에 있네요. 단지 최근 게임이란 묘하게 자주규제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단지 규제라고만 하면 폭력적이나 성적인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단순히 흥미를 돋구기 위한 무의미한 과격 표현인 것도 적지 않기에, 적당히 자주규제해 두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라기보다 그런 호객형 과격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다'라든가 주장하는 건 어떻게 안 되나 하고.
그것과는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것을 자주적으로 규제하는 작품이 늘었다는 느낌이군요. 하지만 이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주규제입니다. 소송 걸리면 피해를 입으니까 미리 피해두자 하는, 군자는 위험에 가까이하지 않으니, 하는 것입니다. 프로듀서로서는 우수하지만 표현의 주체로서는 실격인지도. 뭐 표현의 주체가 군자가 아니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만자가 고리십자[각주:1]를 연상시키니까 삭제한다든가, 해외에서 매상에 신경쓰기에 종교적인 것에 민감한 것도 있고요. 일본에서는 지도기호로도 익숙한 만자가 어디에든지 있습니다. 동방은 사람을 먹는 요괴가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식인종을 방불케 합니다. 오히려 만자를 회전시키는 공격도 있고요, 대각선으로 기울이면 고리십자로 보일지도 몰라, 대체로 돈이 걸리면 위험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역시 이렇다 할 자주규제는 하지 않기 때문에 동방을 해외로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유령과 망령의 개념은 게임 내에서 일절 설명이 없으니 이것도 대다수가 구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일본인이라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애초 사이교 법사를 알 리도 없고,왜 유령이 느긋한지도 알 수가 없고요. 영야초에 이르러서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설명이 게임 내에 일절 없는, 뚜렷하지 않은 개념이 많습니다.
규제하거나 어려운 설명이필요한 장면을 없앰으로써 표현의 장을 세계로 넓힐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하나 설명해 줄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꾸로 좁은 동인의 세계에서 머무르는 것으로 깊은 표현의 장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말로 내뱉는 순간 의미를 잃어 버리는, 개념의 애매함을 보존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어느 쪽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요.
단정밀도라도 부동소수는 100조나 되는 천문학적인 크기의 값도, 100조분의 1이라는 굉장히 작은 표현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100조 + 1/100조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수(Integer)와 비교하면 표현한도는 현격하게 다르지만 순간적으로는 비슷한 양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겁니다.
컴퓨터 게임은 결국 수치연산의 집합입니다. 그 때문인지 관계없는지 몰라도 게임이라는 표현수단 자체도 숫자와 닮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을 표현력과 같은 것이라고 해서 고정소수로 볼 것인가, 혹은 부동소수로 볼 것인가... 그런 부분도 표현자의 기량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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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긴 후기가 되었습니다. 내용은 딱히 아무 것도 없는 그냥 잡문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은 여기밖에 없기에(웃음)
그러면 영야초 제품판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 때까지는 밤을 밝혀서는 안 돼요.
■2.캐릭터 설정 간이판
체험판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간이 소개입니다.
제대로 된 소개는 제품판에서.
○리글 나이트버그 (リグル・ナイトバグ)
1면 보스. 요괴 반디.
벌레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을 갖는다.
벌레 중에서는 독을 가진 벌레도 있다.
털진드기를 대량으로 조종한다면 인간도 손 쓸 도리가 없다. 실은 강한지도.
○미스티아 로렐라이 (ミスティア・ローレライ)
2면 보스. 요스즈메.
노래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정도의 능력을 갖는다.
인간은 울음소리밖에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정체는 불명.
울음소리로 보아 참새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말 참새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인간은 모습을 알 수 없기에 그녀에게 공포를 느끼지만 실제로 보면 어떻게 생각할 지 불명.
인간을 새눈(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병)으로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다.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上白沢 慧音)
3면 보스. 반인반수.
역사를 먹는(감추는) 정도의 능력과, 역사를 만드는 정도의 능력을 갖는다.
전자는 인간의 모습일 때, 후자는 짐승의 모습일 때의 능력이다.
보통은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 정체는 보름달이 뜰 때 모든 지식을 깨우친다고 하는
백택으로 변신하는 워(were)백택이지만, 보름달이 지면 소화불량인 눈치.
항상 인간의 아군으로 환상향을 요괴들의 손에서 지키고 있다.
그녀가 환상향의 역사 중에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다.
-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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